[이주승 칼럼] 말하기의 기본기에 관하여

말하기의 기본기에 관하여: 말 잘하는 스킬을 넘어설 용기


"말을 잘하는 공식을 알고 싶어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있어 보이는 말을 하고 싶어요."
"상대방의 논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언변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주위 사람보다 말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갖는다. 말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인상이 결정되고 나의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의견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일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꼭 필요한 스킬임에 틀림없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올 때까지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대부분 사람은 '말을 잘하는 법'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말을 잘하는 스킬에 모든 관심이 편중되어 있는 나머지, 자세나 태도와 같이 '말하기의 기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이 기본기를 갖출 기회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말을 수려하게 잘하는 것에 대한 정보와 논의에 비해 말할 때 갖춰야 할 태도와 원칙에 대한 정보나 논의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말하기의 기본’은 이렇다.


분별력

먼저 말할 때는 나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 혹은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다. 대화를 나눌 때나 업무를 진행할 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본다. 이를테면, 최근 이슈몰이를 해 미디어에서 열심히 받아 적는 기사의 한 부분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 마치 자기 생각처럼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명사의 인터뷰를 보고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 못한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이는 또 다른 영역이니 논외로 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는 행위의 기저에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되고 이해가 간다. 나 자신도 그러한 욕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는 말에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고,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할 때는 내 생각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밝히면 좋겠다. 어떠한 정보를 접하고 그것에 대해 사유해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정보가 내 지식과 경험과 어우러져 나의 생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출처는 정확히 밝혀줘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본성이란 이래”라거나 “우리나라는 북유럽 국가의 00 모델을 어서 빨리 도입해야 해”라고 말하는 대신 “최근에 사람의 본성을 분석하는 어떤 철학자의 글을 읽었어. 읽으면 읽을수록 무릎을 탁 치게 되지 뭐야. 그 사람의 주장은....라고 해. 아직 내 생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나는...라고 느꼈어”와 같은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을 구분해주면 듣는 사람도 그 정보를 더욱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는 화자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용기

또 다른 말하기의 기본은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이론이나 정보 혹은 애매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것을 말의 서두에서 밝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이중 대부분은 잊어버린다. 최근에는 내용을 되도록 쉽게 요약하고 풀어주는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접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직접 찾은 정보에 비해 떠먹여 주는 정보가 더 쉽게 잊히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점을 인지하고 애매하게 알고 있는 것을 서두에서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잘 모른다고 말해버리면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내 말의 권위는 떨어지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말이다. 자신조차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엄밀히 말해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부정확할지도 모르는 정보라고 판단하면 “며칠 전에 팟캐스트(또는 기사)를 통해 접했는데 다시 한번 더 사실을 확인해야하지만”이라고만 밝혀주어도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의 기본은 지킬 수 있다.


정직

다음으로 읽거나 보지 않은 책과 자료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기사에서 요약 발췌한 일부 논문 자료만 보고 마치 그것을 다 읽은 것처럼 말을 한다거나 책의 서평이나 요약본만 읽거나 듣고서 그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그렇다. 유독 책과 관련하여 이러한 말하기 방식을 자주 목격하는데, 한때 불었던 고전 읽기 열풍이 이 현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은 다 읽었는데 나만 그 책을 읽지 않은 건 아닐까, 라는 자격지심에서 온 것 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읽지도 않은 책을 마치 읽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할 때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면, 그리고 우리 교육이 그렇게 가르친다면, 자신도 접하지 못한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때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모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조명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걸 읽은 척하지 말자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해서 그걸 지금 당장 읽을 필요도 아는 척할 필요도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된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대화가 풍부해진다.


최소한의 노력

또 하나 명심해야 할 말하기의 기본은 누군가의 결과물이나 정책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 없이 섣불리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 별로인 것 같던데”, “그 작가 별로인 것 같던데”, “그 정책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류의 평가는 그것을 경험한 후에 내리는 '비판'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이나 느낌으로 하는 '비난'이라는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마음의 문을 열어두기는커녕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판하고 갈등을 표출화하는 것이 사회에 이롭다고 믿는 나로서도 이런 류의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누군가를 말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는 것이 말을 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글에서보다 특히 말에서 기본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즉흥적이고 금방 휘발되는 말의 특성상 글을 쓸 때와 달리 문장 하나를 말하더라도 고민하지 않고 말하게 된다. 동시에 남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 남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너무 드러내면 안 된다, 라는 조언이 넘치는 사회에서 개인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하는 말을 교묘하게 꾸며야 손해보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말에는 큰 힘이 있다. 말을 하는 내용과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런 점에서 말을 전달하는 사람은 말의 기본을 지킬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에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더욱더 잘 인식하고 드러내며, 이는 개인 간 더욱더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연료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말 잘하는 방법론'에 쓰는 시간의 10%만이라도 '말의 기본'에 대해 생각해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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