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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승 칼럼] 불만과 갈등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 토론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우리 사회에서 똥만큼 하찮은 취급을 받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불만''갈등'이다. 위 속담에서 똥을 갈등이나 불만 제기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렇듯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갈등이나 불만 제기는 똥만큼 더럽고 불경스러운 일로 치부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능한 한 갈등과 불만을 갖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불만과 갈등은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필자가 진행하는 강의를 통해 만나는 교육생들에게 위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별 고민 없이 갈등과 불만은 나쁜 것이라고 답한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수업에, 학교 환경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대부분의 어른들은 불평 좀 그만해라,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라는 얘기를 한다.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에, 관행에 불만을 드러내면 그 불만이 “합리적”인지 따지지 않고 혼부터 나거나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대개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두기만 한다. 그러다 보면 불만을 삭히는 일이 일상적이 되어버리고 나중에는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도 알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필자는 한 사람의 토론자로서, 불만을 갖는 것은 (그리고 그 불만이 합리적이라면) 개인과 사회에 매우 좋은 일이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만을 갖는 것은 주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할 때야 비로소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뉴스룸>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뉴스 앵커 윌 매커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한다. 언뜻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문제의 중심에서 달아난다. 문제 인식이 해결 방안을 찾는 첫 단계라고 한다면, 불만을 갖는 것이 문제를 인식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인데도 말이다.



갈등에 대한 인식 역시 불만에 대해 갖는 시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갈등은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사회에는 수많은 개인이 어울려 살아가며, 이 안에서 저마다의 고유한 개성을 가진 개개인의 입장과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살아온 환경도 다른 무수한 사람들은 동일한 사안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X라는 정책에 대해서, Y라는 사람에 대해서 A, B, C라는 사람이 같은 의견을 보일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온 우리는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속으로 되뇐다.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며, 이는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좋지 못한 일이다. 갈등을 표면적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문제점을 찾아낼 수도 없고 상황을 개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갈등은 겉으로는 나빠보여도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대안을 찾으려 하고, 기존의 정책과 법 등을 재평가하여 더 나은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좋은 것이라고?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어.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갈등을 표면화하는 것은 더 많은 감정적 소모, 그리고 갈등으로 이어지기만 할 뿐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우려도 일리 있는 말이다. 갈등을 표면적으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토론이다. 불만이 문제를 인식하는 첫걸음임을 이해하고, 갈등 상황을 표면화하여 더 나은 나와 사회를 만드는 대안에 합의하기 위하여 우리는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은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토론을 기피해왔다. 하나는 토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대중매체에서 비추는 갈등 상황이나 토론회를 보면 토론이라기보다는 말싸움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고 무조건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TV에서 나오는 정치인 등 유명 인사나 전문가의 토론 자세가 이러니 사람들은 토론은 말싸움하는 것이고,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킨다고 인식하게 된다.


토론을 기피해 온 두 번째 이유는 말하는 사람의 의견과 인격을 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교문화가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달리하면서 더 나은 생각으로 발전시키기 힘들고, 토론을 해봤자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괜한 원망을 산다고 생각하기 쉽다. 


잘 생각해보면 의견은 나에게서 나오는 극히 작은 조각일 뿐이고,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내 의견과 생각을 달리하면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문화는 여전히 강하고, 이는 생각의 교환과 융합을 억압할 뿐이다.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조직에게도, 사회에게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비극일 뿐이다.


다행히도 시대의 변화는 더 많은 토론을 요구하고 있다. ‘하면 좋은 것’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적어도 제도가, 시대가 그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불만과 갈등은 사실 사회악이 아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만과 갈등은 똥이 아니라 황금에 가깝다. 그리고 황금은 능숙한 금 세공사가 있어야 제대로 된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우리가 토론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원문: https://brunch.co.kr/@debat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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