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주승 칼럼] 청년 대변인 선발 과정에서 토론을 사용하면 다일까?


누군가 말했다. 대한민국에는 토론 문화가 없다고. 사람들은 진짜 토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한 10년 전이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토론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토론을 도입하는 곳이 꽤 많아졌다. 국가 교육 과정에 토론이 일부 포함되어 있고, 초, 중, 고등학교 수행평가에서 토론을 통한 평가가 이뤄지기도 한다. 대학 면접에서 집단 토론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회사나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채용 과정의 일환으로 토론 면접을 거쳐야 할 때도 있다. 주민 자치의 영역에서도 토론은 서로 다른 의견을 이어주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준석 당대표 시절 국민의힘이 당 대변인 선발을 위해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라는 토론의 장을 먼저 쏘아 올렸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청년대변인 선발을 위한 ‘더블루스피커’를 개최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은 1차 서류와 동영상 심사를 통해 전체 지원자를 31명으로 압축하였다. 이후 2차 논평 작성과 1분 스피치 심사를 통해 3차 공개토론회 토론자 8명을 선발하였다. 공개토론회에서 1등과 2등을 한 사람은 각각 대변인과 상근부대변인 역할을 하게 된다. 토론만 잘해도 거대 정당에서 대변인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앞서 진행한 ‘나는 국대다’ 행사가 흥행을 하였고 여러 토론 대회 레퍼런스가 많아진 만큼, 더불어민주당에서 어떤 토론의 장을 보여줄지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더블루스피커’는 토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토론을 도입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이었다. 한 사람의 역량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데 토론만 한 게 없다고 믿는 사람으로서(특히 대변인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이러한 시도를 온 마음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잘못 기획된 토론은 오히려 토론에 대한 편협한 통념을 강화할 수 있다. 가령, 말만 잘하면 이기는 게 토론이라든가, 어떤 토론이든 주제에 따라 유불리가 정해진다든가, 토론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식의 세간의 의견처럼 말이다.


우선 3차 공개토론회 현장으로 가보자.



토론회는 총 3번의 라운드로 구성되었고, 각 라운드에서 상위 점수를 받은 사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라운드에서는 2차 심사를 통과한 8명의 지원자가 찬성과 반대로 나눠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라는 주제로 4:4 토론을 진행하였다. 찬성 측에서 먼저 발제를 시작하고, 이후 반대 측의 발제, 이어서 다시 반대 측의 반박, 그다음에 찬성 측에서 반박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개인에게 주어진 발언 시간은 2분. 모든 지원자가 2분의 최초발언을 마친 후에는 1분의 추가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각 지원자는 전체 토론에서 3분의 발언 기회를 가진 셈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개인당 3분밖에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심사위원단은 지원자의 토론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이 3분이라는 시간에는 상대와 질의응답 과정을 통해 서로의 논리를 직접 겨루는 과정도 없었다. 일방향의 토론 발언 위주로 진행된 셈이다. 인원은 많은데 토론 시간은 부족하니 논의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유튜브에서 실시간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을 줄일 필요도 있었겠다. 그러나 개인의 토론 시간을 너무 제한하면 역으로 토론에서 지원자의 사소한 부분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여지가 커진다. 심사위원이 지원자의 토론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형식은 토론회가 맞는데, 내용은 발표회에 더 가까운 토론이 되어버려 심사위원의 개인적 선호가 반영될 여지가 커진다.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사람 없이 2차 토론을 한 번 더 진행한 후 점수를 종합하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단 한 번의 토론으로 3차 공개토론회 대상자의 반이 탈락하는 점을 고려하면 토론 시간 등 형식 설계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블루스피커’의 목적은 토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귀와 입이 되어줄 사람을 선발하는 것일 거다. 토론 시간을 늘리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세부 규칙을 조정하였다면, 여러 경쟁을 뚫고 온 지원자도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고, 심사위원도 더 정확하게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공개토론회의 마지막 3라운드로 가보자. 2라운드 2:2 토론을 통과한 2명의 지원자는 '범죄자 신상공개 기준 완화'에 대해 1:1 토론을 진행하였다. 각 토론자에게는 최초 발언 2분과 추가 발언 5회(발언당 제한시간 1분씩)가 주어졌다. 2명이 적어도 7분 정도는 상호 교차 토론을 하므로 토론의 밀도도 더 높아질 것이고, 역량 평가도 더 용이해지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추가 발언을 5회나 주었는데, 왜 일방적인 발언만 하도록 규칙을 설계했는지 의문이 든다. 각 토론자가 돌아가며 주도권을 갖고 질문하고, 상대는 이에 답하는 일종의 주도권 토론을 했다면 더 역동적이고 쟁점이 풍부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토론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잘 듣고 질문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서로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토론 형식을 살펴봤으니, 심사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 쉽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심사가 잘 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더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이번 토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느낀 점은 심사위원마다 ‘토론’에 대해, ‘더블루스피커’ 행사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토론과 토론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토론 행사를 기획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더불어민주당(또는 운영진)이 지향하는 방향이나 심사 지침이 무엇인지 논의조차 하지 않거나 운영진조차 서로 다른 생각을 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혹은 행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내 이해관계자나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다 반영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도 저도 아닌 토론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토론을 통해 지원자 역량을 평가하기로 했다면, 기본적인 토론 심사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필수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고 싶어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윤범기 MBN 기자가 심사평에서 아쉬운 점으로 꼽은 말이다. 행사의 운영 방식과 반대되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추첨으로 찬반이 나뉘는 토론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행사에서 꼭 그 언급을 해야 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알려면 면접을 진행하거나 정책 발표를 하게 하면 된다.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이런 불일치가 나왔던 데는 운영진이 ‘왜 토론을 통해서 대변인을 뽑아야 하는지’, ‘우리가 지향하는 토론의 특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심사위원진에게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이유가 클 것이다. 이후에도 서용주 상근 부대변인도 “롤플레잉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쉽다”는 발언을 하는 데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대변인을 토론으로 뽑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어떠한 사안이 나와도, 어떠한 당론이 채택되어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설득력 있게 대변할 수 있는 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인데, 토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심사를 하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은 의문이 생긴 부분은 심사 기준표에 대한 것이다. 심사 기준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김준일 뉴스룸 수석에디터의 말에서 평가 항목을 엿볼 수 있다. 토론 채점표에 <당 이해도> 항목이 있고, 이에 대한 세부 항목으로 다음 기준이 있다고 한다.


  • 논평, 브리핑, 보도자료 등 당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였는가
  • 윤리규범을 고려하여 토론했는가
  • 당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하여 토론했는가


토론을 통해 대변인을 선발하자고 했는데, 당내 운영진이 토론이 무엇인지, 토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했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가뜩이나 찬반 균형이 잘 맞춰진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만반을 기울여야 하는데, <당 이해도> 항목을 넣어버리면 일부 주제에서 불리한(적어도 불리하다고 느끼는) 입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윤범기 MBN 기자의 “뽑기 운이 중요하다”라는 지적에서도 알 수 있다. 채점표가 그러니 심사위원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2라운드 토론의 주제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인데, 내부 소수 의견이 있지만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갈리는 사안이다. 토론에서 "당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측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롤플레잉인데 왜 그러냐? ...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쉬운 수능을 대변하라는 식으로 하면 더 좋다”라고 언급하며 심사 기준표의 모호함을 김준일 심사위원이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곳에서 토론을 도입하고 있고, 살면서 한 번쯤은 토론을 접하게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토론이 양적으로 팽창했다면, 이제는 양질의 토론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는데 집중해야 한다.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토론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행사는 아무리 토론을 매개체로 활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과정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토론이 잘 되는 모습을, 생산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그들이 토론하는 모습, 방식, 태도를 미디어를 통해 보고 학습하며 토론에 대한 인식을 확립해 나가기 때문이다. 토론을 활용하는 이러한 시도는 계속 유지하되 토론이 잘 설계된 예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바람을 담아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을 나눴지만, 우리나라 정당들의 새로운 도전과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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