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디베이트포올의 이주승입니다. 앞선 질문들은 제가 강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인데요. 질문을 받아도 프로젝트 회의나 강의가 우선이라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거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넘어가곤 합니다. 그러다가 지방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당연해져서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는 그 질문에 대해서 말이죠. 흥미로운 발견은,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이 회사를 시작할 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답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그 결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과거의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너무나도 확고하고 명확한 답이 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계기를 하나의 매끄러운 계기와 경험으로 재구성하여 말하곤 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풀어보자면, 교육 격차 문제를 토론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풀고 싶다고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의 이유로 이 일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여러 경험, 사람, 관계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이 일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디베이트포올은 2012년 5월에 프로젝트 형태로 시작했고, 2013년 8월 28일에 주식회사로 전환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법인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받았을 때 약간의 두려움과 수많은 설렘이 교차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간’ 해보자고 했던 일이 상상 이상으로 더 빠르게 현실이 되었고 업이 되었습니다.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사건에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여러 가능성이 있었고, 안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시작이 있듯이, 토론을 해보지 않았다면 디베이트포올은 시작하지 않았겠죠. 저는 대학생 때 토론을 처음 접했습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토론을 배우는 것을 감안하면, 늦은 나이에 제대로 된 토론을 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을까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입시 공부와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학교 환경에 반감을 품었고, 때마침 외국 영화나 방송에서 여러 현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간 저런 수업을 들어보고 실제로 토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전 세계 대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논리를 겨루는 토론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문제는 대학에 토론 동아리도 없고, 토론을 배울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말 토론조차 생소한 개념이었으니 영어로 하는 토론은 더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대학 토론 동아리를 만들었고, 당시 부총장님께 5개년 목표와 계획서도 제출하여 학교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방학 중에 토론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가서 그 내용을 최대한 흡수했고 이를 동아리 부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백방으로 물어서 학교 토론 팀 코치진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수업보다 토론 동아리 활동과 대회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길 2년쯤 되었을까요, 국내외 유수 대회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 대학 팀은 3년이 되었을 때 국내를 넘어선 아시아 주요 토론 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쯤에 3년 동안 회장으로 활동했던 동아리 회장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열정과 에너지는 다시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것을 쏟아부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노혜원 대표는 고등학생 때 토론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처음 나간 전국 고등학생 영어 토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결국 세계 학생 토론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됩니다. 처음 나간 세계 학생 토론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 토론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인 8강 진출을 하게 됩니다. 대학에서도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서 국내 대회와 아시아 지역 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합니다. 토론에 대한 재능이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노혜원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단순히 토론뿐만 아니라 토론 관련 여러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토론 배움을 위한 기회가 비교적 많았던 노혜원 대표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그 경험과 기회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학 토론 동아리를 이끌기도 하고 여러 토론 행사를 기획해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저와 노혜원 대표는 한 국제 토론대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토론대회에서 경쟁자로 자주 만나기도 하였고, 대학생을 위한 해외 토론 교육 프로그램들에 코치로 초청받아 함께 하기도 하였고, 서로 국내 주요 토론대회들의 심사위원장을 번갈아 하며 인수인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대치동의 한 영어 학원에서 함께 토론 코치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사건은 단편적으로 볼 수 없고 저마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 사건을 촉발하는 하나의 강력한 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디베이트포올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일이 있다면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한 것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토론을 제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토론을 잘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고, 토론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에 이것이 제게는 오히려 토론을 더 계속하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토론 활동과 더불어 꽤 많은 시간을 쏟은 창업과 사회적 기업 관련 대외 활동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제 전공인 경영학 지식과 역량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창업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50대 이후 해보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졸업하면 경영 컨설팅이나 소비재 회사로 가야지, 하고 4학년에는 관련 인턴십도 했었습니다. 노혜원 대표는 해외 대사관 인턴십을 마치고 외무고시를 준비해야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내적 고민을 하고 있었고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면,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예쁘고, 대학생인데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큰 고민 없이 주변 사람이나 후배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줄 수 있고, 나 자신에게 투자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가르치는 학생들이 토론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노력해서 힘들게 얻은 토론 실력과 노하우를 아주 소수의 선택된 학생들에게만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제 경험과 대치동에서 보는 교육의 세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두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네트워크와 재력에 따라 그 출발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육 방식도 토론의 본질을 학생들에게 전하기보다는 일단은 토론 대회에서 좋은 성과만 내면 된다는 ‘이기기 위한 토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좋은 교육을 소수의 학생들만 위해서 돈을 좇아서 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토론 교육을 통해서 제 가치관과 삶이 바뀔 만큼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아마도 내가 옳다고 믿지 않는 가치관과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청년의 패기랄까, 알량한 자존심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혜원 대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업과 학원 일을 병행하면서 일단은 한 번 시작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학교 동아리 부원들 몇 명과 토론 관련 사업을 준비합니다. 교육 격차 완화를 회사의 미션으로 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할 생각으로 일단 시작합니다. 여러 회의를 통해 회사 이름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토론 교육이라는 의미가 담기게 ‘Debate For All’로 정합니다. 단순 토론 교육이 아니라 ‘대치동 수준의 토론 교육을 전국 어디에서나’라는 나름의 기준도 만듭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전국 주요 초, 중, 고등학교에 토의토론 수업을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세웁니다. 마침, 대학생을 위한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이 시작한 시기라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초창기 사업이라 운이 좋게도 덜컥 합격하였습니다. 지원사업에 합격하니 돈도 주고 사무실 공간도 주고, 사업 진행 보고도 해야 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때마침 노혜원 대표가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일에 속도가 더 붙게 됩니다. 일을 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많았고, 회사 교육 프로그램 브로슈어를 만들어서 전국 학교에 우편으로 부치느라 몇 날 며칠을 수작업을 하며 보내기도 했지만, 기존에 없던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에 힘든지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비용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토의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에, 학생들이 단순히 시험 내용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플 때까지 생각해 보고 자기가 낸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그려보는 재미에, 정신 차리고 보니 졸업 후 디베이트포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요?
거창하게 말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가장 솔직한 답은 저마다의 경험이 교차하여 디베이트포올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토론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토론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갖는 자유와 즐거움을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토론자라는 하나의 자아를 넘어선 무언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토론 교육을 통해 교육 격차라는 거대한 문제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보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좋은 걸 우리만 알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일 겁니다. 이를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설명한다면, 사회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청소년과 청년이 미래 핵심 역량을 갖춘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토의토론이라는 우리의 무기를 통해서요. 그렇기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된 지금도 디베이트포올은 지자체, 교육청, 재단 등과 함께 토론 문화 활성화 사업에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모두가 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수도권 학교부터 땅끝마을의 분교까지 전국 어디로든 토론 수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우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방식의 토론 교육과 문화를 우리 사회에 도입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시작한 계기, 이유는 여전히 유효할까요?
토론을 통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내 의견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틀린 의견은 없고 다른 의견만 있을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토론을 통해 학습 자체가 재미있어졌고 한 개인으로서 더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이제는 내 목소리를 갖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매 교육 과정이 끝난 후 수강생 피드백을 받으면 꼭 나오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그리고 다른 곳에서 받기 힘든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라는 응답과 “제대로 된 토의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응답인데요. 이런 피드백을 접할 때면 좋은 수업을 해준 우리 코치진이 먼저 떠오르고, 우리가 학생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반대로, 이러한 피드백은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규 교과 과정에서 토론을 여러 단원에 걸쳐 가르치고 있고, 논술 학원이 토론 학원으로 바뀌는 등 과거에 비해 토론 교육이 보편화된 요즘에도 양질의 토론 교육을 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위 1% 수준의 교육을 99%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이겠죠. 양질의 교육을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 우리가 여전히 이 일에 열정이 있고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입니다.
안녕하세요. 디베이트포올의 이주승입니다. 앞선 질문들은 제가 강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인데요. 질문을 받아도 프로젝트 회의나 강의가 우선이라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거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넘어가곤 합니다. 그러다가 지방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너무 당연해져서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는 그 질문에 대해서 말이죠. 흥미로운 발견은,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이 회사를 시작할 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답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그 결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과거의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너무나도 확고하고 명확한 답이 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계기를 하나의 매끄러운 계기와 경험으로 재구성하여 말하곤 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풀어보자면, 교육 격차 문제를 토론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풀고 싶다고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의 이유로 이 일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여러 경험, 사람, 관계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이 일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디베이트포올은 2012년 5월에 프로젝트 형태로 시작했고, 2013년 8월 28일에 주식회사로 전환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법인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받았을 때 약간의 두려움과 수많은 설렘이 교차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간’ 해보자고 했던 일이 상상 이상으로 더 빠르게 현실이 되었고 업이 되었습니다.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사건에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여러 가능성이 있었고, 안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시작이 있듯이, 토론을 해보지 않았다면 디베이트포올은 시작하지 않았겠죠. 저는 대학생 때 토론을 처음 접했습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토론을 배우는 것을 감안하면, 늦은 나이에 제대로 된 토론을 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을까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입시 공부와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학교 환경에 반감을 품었고, 때마침 외국 영화나 방송에서 여러 현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간 저런 수업을 들어보고 실제로 토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전 세계 대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논리를 겨루는 토론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문제는 대학에 토론 동아리도 없고, 토론을 배울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말 토론조차 생소한 개념이었으니 영어로 하는 토론은 더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대학 토론 동아리를 만들었고, 당시 부총장님께 5개년 목표와 계획서도 제출하여 학교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방학 중에 토론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가서 그 내용을 최대한 흡수했고 이를 동아리 부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백방으로 물어서 학교 토론 팀 코치진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수업보다 토론 동아리 활동과 대회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길 2년쯤 되었을까요, 국내외 유수 대회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 대학 팀은 3년이 되었을 때 국내를 넘어선 아시아 주요 토론 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쯤에 3년 동안 회장으로 활동했던 동아리 회장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열정과 에너지는 다시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것을 쏟아부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노혜원 대표는 고등학생 때 토론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처음 나간 전국 고등학생 영어 토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결국 세계 학생 토론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됩니다. 처음 나간 세계 학생 토론대회에서 우리나라 학생 토론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인 8강 진출을 하게 됩니다. 대학에서도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서 국내 대회와 아시아 지역 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합니다. 토론에 대한 재능이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노혜원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단순히 토론뿐만 아니라 토론 관련 여러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토론 배움을 위한 기회가 비교적 많았던 노혜원 대표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그 경험과 기회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학 토론 동아리를 이끌기도 하고 여러 토론 행사를 기획해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저와 노혜원 대표는 한 국제 토론대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토론대회에서 경쟁자로 자주 만나기도 하였고, 대학생을 위한 해외 토론 교육 프로그램들에 코치로 초청받아 함께 하기도 하였고, 서로 국내 주요 토론대회들의 심사위원장을 번갈아 하며 인수인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대치동의 한 영어 학원에서 함께 토론 코치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사건은 단편적으로 볼 수 없고 저마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 사건을 촉발하는 하나의 강력한 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디베이트포올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일이 있다면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한 것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토론을 제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토론을 잘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고, 토론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에 이것이 제게는 오히려 토론을 더 계속하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토론 활동과 더불어 꽤 많은 시간을 쏟은 창업과 사회적 기업 관련 대외 활동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제 전공인 경영학 지식과 역량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창업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50대 이후 해보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졸업하면 경영 컨설팅이나 소비재 회사로 가야지, 하고 4학년에는 관련 인턴십도 했었습니다. 노혜원 대표는 해외 대사관 인턴십을 마치고 외무고시를 준비해야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내적 고민을 하고 있었고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면,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예쁘고, 대학생인데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큰 고민 없이 주변 사람이나 후배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줄 수 있고, 나 자신에게 투자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가르치는 학생들이 토론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노력해서 힘들게 얻은 토론 실력과 노하우를 아주 소수의 선택된 학생들에게만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제 경험과 대치동에서 보는 교육의 세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두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네트워크와 재력에 따라 그 출발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육 방식도 토론의 본질을 학생들에게 전하기보다는 일단은 토론 대회에서 좋은 성과만 내면 된다는 ‘이기기 위한 토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좋은 교육을 소수의 학생들만 위해서 돈을 좇아서 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토론 교육을 통해서 제 가치관과 삶이 바뀔 만큼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아마도 내가 옳다고 믿지 않는 가치관과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는 청년의 패기랄까, 알량한 자존심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혜원 대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업과 학원 일을 병행하면서 일단은 한 번 시작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학교 동아리 부원들 몇 명과 토론 관련 사업을 준비합니다. 교육 격차 완화를 회사의 미션으로 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할 생각으로 일단 시작합니다. 여러 회의를 통해 회사 이름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토론 교육이라는 의미가 담기게 ‘Debate For All’로 정합니다. 단순 토론 교육이 아니라 ‘대치동 수준의 토론 교육을 전국 어디에서나’라는 나름의 기준도 만듭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전국 주요 초, 중, 고등학교에 토의토론 수업을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세웁니다. 마침, 대학생을 위한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이 시작한 시기라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초창기 사업이라 운이 좋게도 덜컥 합격하였습니다. 지원사업에 합격하니 돈도 주고 사무실 공간도 주고, 사업 진행 보고도 해야 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때마침 노혜원 대표가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일에 속도가 더 붙게 됩니다. 일을 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많았고, 회사 교육 프로그램 브로슈어를 만들어서 전국 학교에 우편으로 부치느라 몇 날 며칠을 수작업을 하며 보내기도 했지만, 기존에 없던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에 힘든지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비용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토의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에, 학생들이 단순히 시험 내용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플 때까지 생각해 보고 자기가 낸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그려보는 재미에, 정신 차리고 보니 졸업 후 디베이트포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요?
거창하게 말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가장 솔직한 답은 저마다의 경험이 교차하여 디베이트포올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토론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토론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갖는 자유와 즐거움을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토론자라는 하나의 자아를 넘어선 무언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토론 교육을 통해 교육 격차라는 거대한 문제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보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 좋은 걸 우리만 알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일 겁니다. 이를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설명한다면, 사회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청소년과 청년이 미래 핵심 역량을 갖춘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토의토론이라는 우리의 무기를 통해서요. 그렇기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된 지금도 디베이트포올은 지자체, 교육청, 재단 등과 함께 토론 문화 활성화 사업에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모두가 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수도권 학교부터 땅끝마을의 분교까지 전국 어디로든 토론 수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우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방식의 토론 교육과 문화를 우리 사회에 도입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시작한 계기, 이유는 여전히 유효할까요?
토론을 통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내 의견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틀린 의견은 없고 다른 의견만 있을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토론을 통해 학습 자체가 재미있어졌고 한 개인으로서 더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이제는 내 목소리를 갖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매 교육 과정이 끝난 후 수강생 피드백을 받으면 꼭 나오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그리고 다른 곳에서 받기 힘든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라는 응답과 “제대로 된 토의토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응답인데요. 이런 피드백을 접할 때면 좋은 수업을 해준 우리 코치진이 먼저 떠오르고, 우리가 학생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반대로, 이러한 피드백은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규 교과 과정에서 토론을 여러 단원에 걸쳐 가르치고 있고, 논술 학원이 토론 학원으로 바뀌는 등 과거에 비해 토론 교육이 보편화된 요즘에도 양질의 토론 교육을 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위 1% 수준의 교육을 99%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이겠죠. 양질의 교육을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 우리가 여전히 이 일에 열정이 있고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입니다.